최근 많은 기업의 CEO들이 자사주를 잇달아 매입했습니다. 연말이 되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인데요. 현대해상화재보험 조용일 대표는 지난 23일 자사주 4000주를 사들였습니다. 최윤호 삼성 SDI 사장은 22일 자사주 500주를 매입했습니다. 이렇듯 매년 연말이 되면 많은 기업에서 자사주를 매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자사주 매입의 동기와 장단점에 대해 쉽게 풀어봤습니다.
자사주 매입(Stock Byback/Repurchase)이란 말 그대로 기업이 자기 회사 주식을 사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발행한 주식을 다시 사들이는 거죠. 기업이 자사주 매입가 완료된 후 취득한 주식을 소각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은 자사주 소각 (Retirement/Cancellation of Shares)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매입한 주식은 자사주 (Treasury Srock)로 보유됩니다. 이는 외부 주식발행에 속하지 않으며 주당순이익 (EPS)의 계산과 배당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자사주는 향후 전환사채 (Convertible Bond) 발행, 종업원 복지제도 등 다른 용도로 활용하거나 자금이 필요할 때 매각할 수 있습니다.
자사주 매입의 원리는 순이익의 일부를 주주에게 나눠주는 배당금과 비슷합니다. 주주 입장에서는 회사가 배당금을 주던 자사주를 매입해 주식을 나눠주던 큰 차이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A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A의 기업가치는 100만 원, 주식 수는 100주입니다. 그럼 한 주당 가격은 1만 원이 되겠죠? 이때 A가 주주들에게 배당금으로 30만 원을 나눠준다고 가정해 볼게요. 회사 돈으로 30만 원이 나가는 거니까 기업가치는 70만 원으로, 주식 수는 그대로니까 1주당 가격은 7천 원으로 떨어집니다(7천 원*100주=70만 원). 하지만 주주에게는 큰 영향이 없어요. 배당금으로 주당 3천 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7천 원에 3천 원을 더하면 그대로 1주의 가치는 1만 원으로 변함이 없어요.
자사주 매입도 비슷해요. A 기업이 30만 원으로 자사주를 매입했다고 칩시다. 자기 돈으로 주식을 사들였으니 마찬가지로 기업가치는 70만 원으로 감소하지만 주식 수가 70주로 줄어듭니다. 1주당 가치에는 변함이 없어요.
참고로 우리나라에서는 금융회사를 통한 자사주 매입은 1992년부터, 회사가 직접 자사주를 매입하는 건 1994년부터 허용됐습니다. 회사 이름으로 직접 자사주를 매입하려면 이사회 결정을 거쳐 증권거래소의 심의를 거쳐야 합니다.
이처럼 자사주 매입은 회사 입장에서는 이익의 일부를 주주들과 공유하는 의미가 있어요. 일종의 ‘감사함’의 표시랄까요. 다만, 앞서 예에서 살펴봤듯이 주주 입장에서는 배당금이나 자사주 매입이나 얻는 가치는 비슷한데요. 그렇다면 왜 굳이 기업들은 자기네 주식들을 사들이는 걸까요?
① 주가 안정화 및 상승효과 기대
(이미지 출처: 중앙일보)
자사주 관련 뉴스를 잘 살펴보면 자사주 매입을 했는데 주가가 올랐다든지 아니면 그대로였다든지 하는 내용이 심심찮게 등장합니다. 주가 안정화 또는 주가 상승효과는 자사주 매입의 여러 동기 중 하나인데요. 실제로 자사주를 매입하면 주가가 오르기도 합니다. 시중에 유통되는 주식 수가 적어져 그만큼 주당 순이익이 많아지기 때문인데요. 주가를 매입하는 새로운 주체가 나타났다는 점 자체만으로도 단기적으로 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또 이렇게 자사주 매입을 통해 주가가 오르면, 기업 입장에서는 기업의 가치가 실제보다 저평가 되어있다고 시장에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나중에 주가가 오른 뒤 다시 되팔면 이익을 얻을 수도 있죠. 많은 회사가 자사주 매입 이유로 주가 안정을 언급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실제로 많은 기업들이 주가가 많이 하락했을 때 자사주를 매입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해요. 일부 전문가들은 ‘매입 자체보다는 이후 소각 여부가 주가 상승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항상 자사주 매입이 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건 아닙니다. 위 이미지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죠. 무조건 자사주 매입을 좋은 소식으로만 생각하는 건 경계해야겠습니다.
② 주당 순이익(EPS)가 높아지는 효과
주가 상승효과와 이어지는 맥락인데요. 주당 순이익이 상승하면 주가도 함께 상승합니다. 주당 순이익이란 'Earnings per share'의 줄임말로 ‘EPS’라고도 합니다. 당기순이익을 유통주식 수로 나눠서 계산하는데요. 여기서 유통주식 수는 회사가 가지고 있는 자사주를 빼고 계산합니다. 따라서 자사주를 매입하게 되면 유통주식 수가 그만큼 감소하기 때문에 EPS 값이 더 커지게 됩니다. EPS가 커질수록 기업 가치의 평가 수준을 알려주는 지표인 주가이익비율(Price earnings ratio, PER)이 하락합니다. PER은 값이 낮을수록 '실제 기업 가치에 비해 주가가 저평가 되어 있다'고 해석됩니다. 그래서 자사주 매입의 주가 상승의 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③ 잉여 현금 처분을 통한 재무 건전성 확보
기업 입장에서는 남아도는 현금을 계속 들고 있으면 부담스럽습니다. 경영자가 사업을 무분별하게 확장하는 등 회사 자금이 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목적에 사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차단하기 위해 잉여 현금을 주주들과 공유하기 위해 자사주 매입을 하여 재무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걸 조금 어려운 말로 미처분 이익잉여금을 처분한다고도 표현합니다. 미 해당 산업에서 충분한 영향력이 있는 기업의 경우, 새로운 성장 분야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서류상 정확한 사용 목적이 없이 지나치게 큰 금액의 자본이 있으면 아무래도 부담이 크겠죠. 실제로 2016년 월트디즈니가 시장에 유통되는 자사주 숫자를 감소시키기 위해 7억 개가 넘는 자사주를 매입한 사례가 있습니다.
④ 적대적 인수합병(M&A) 방어
(이미지 출처: 중앙일보)
적대적 인수합병이란 상대방의 동의 없이 이루어지는 인수합병을 의미합니다. 이를 막기 위한 수단으로 자사주를 매입하여 우호적인 기업과 서로 주식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우호 지분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장점 | 단점 |
- 주가 상승으로 인한 수익 실현 가능성↑ - 세금 부담이 없음 | - 주가 상승효과가 없거나 일시적일 수 있음 - 일관성 부족(시기, 방법 예측이 어려움) |
주가 상승 기대할 수 있지만 무조건 맹신은 '금물'
자사주 매입은 주가에 호재로 작용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주식의 주가가 오르면 당연히 투자자 입장에서는 장점입니다. 통계를 보면 일반적으로 자사주 매입 기업의 주가는 두 달 뒤 평균 약 11%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 증권 전문가는 ‘자사주 매입 기업의 실적을 체크하면서 분할 매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투자 전략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자사주 매입이 항상 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므로 자사주 매입 이후 기업의 행보를 지켜보며 현명하게 잘 판단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또, 배당금과 달리 세금 부담이 없습니다. 배당금을 받으면 배당소득세가 붙는데요. 자사주 매입으로 주가가 올라 차익 실현을 하더라도 여기에 별도로 세금이 붙지 않습니다.
기업의 본질적인 성장 가능성을 판단하기는 어려울 수도
단점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주가가 무조건 오른다는 보장이 없고, 실제 기업의 성장 가능성에 대해 알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일시적인 주가 상승에 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사주 매입은 기업의 본질적인 성장 가능성과 전망과는 큰 관련이 없기 때문입니다. 잉여 현금을 주주들에게 환원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새로운 사업 영역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어느 정도 일정이 명확한 배당금과 달리 언제 어떻게 이루어질지 모른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일관성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주로 테크 기업들이 자사주 매입 전략을 활용해 왔습니다. 미국 시가총액 1위 애플은 2013년 이래 매년 대규모로 자사주를 사들이고 있는데요. 공격적인 자사주 매입 전략의 영향으로 올해 1분기 유통 주식 수가 2014년 1분기 대비 3분의 1 수준까지 감소했습니다. 물론 주가 역시 그 영향으로 꾸준한 상승세를 보여주었습니다. 주가 상승의 원인이 ‘자사주 매입’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상승 모멘텀에 영향을 준 건 사실입니다.
미국 기업 자사주 매입 추이
(이미지 출처: 이투데이)
올해 미국 S&P 500 기업의 자사주 매입 액수도 사상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지난 9월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가 600억 달러 규모의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죠.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서는 지난 4월 한화로 29조가 넘는 압도적인 규모의 자사주 매입 계획을 공개했고,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 역시 내년 6월까지 약 14조 원 달러 규모의 자사주 매입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미국 기업의 자사주 매입 트렌드는 코로나19 여파로 다소 주춤하는 기세였지만, 올해 3~4분기 사상 최대 규모를 갈아치우며 증가 추세로 돌아서고 있습니다. 실제로 ‘자사주 매입’은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미 증시 상승 동력의 유력한 키워드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글로벌 증시에 큰 영향을 주는 S&P 500 지수는 올해 25% 상승한 바 있습니다.
한편 기업이 잉여 수익을 투자가 아닌 자사주 매입에 사용한다며 비판하는 목소리도 일부 있습니다. 기업 자사주 매입에 1% 세율이 적용하는 방안이 포함된 예산안 법안이 현재 미 상원에 계류 중이라고 하네요.
2021년 연말 자사주를 매입한 대표적인 사례로는 우리금융그룹, 한화손해보험, 휴젤, 삼성 SDI, 현대차 등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자사주 매입은 기업의 책임 경영 의지를 보이는 것으로 해석하는데요. 상황에 따라 다른 의미가 내포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이투데이)
· 꼭 기업의 대표가 아니더라도 임원 또는 법인을 통해 자사주를 매입하기도 합니다.
현대차는 법인에서 2022년 2월 중순까지 5천억 원 규모의 주식을 매입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요. 자기주식을 취득하여 주주 가치를 제고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1년간 현대차 주가 시세 추이, 시가총액
출처: 네이버
· 휴젤 300억 규모 자사주 매입…기업 가치 제고 목적
2021년 12월 13일, 휴젤은 신탁계약 체결을 통해 300억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초보 투자자분께는 다소 낯선 기업일 수도 있겠는데요. 휴젤은 글로벌 바이오 기업으로, 보툴리눔 톡신 등 미용 목적의 시술에 주로 사용되는 제제입니다. 한 마디로 ‘보톡스’라고 할 수 있죠.
삼성증권을 통해 2022년 6월 13일까지 매입을 완료할 예정이고, 지난 20일에는 10만 주를 무상으로 소각했습니다. 이 소식에 이날 휴젤 주가는 상승하기도 했습니다.
휴젤이 이렇게 대규모로 자사주 매입에 나선 이유는 주주 및 기업 가치를 제고하고 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서인데요. 자사주 매입이 어떻게 주주와 기업의 가치 상승에 도움이 되는지는 바로 다음 단락에서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러한 결단은 최근 있었던 주가 하락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휴젤에서 가장 잘 알려진 주력 제품은 보툴렉스 등 보툴리눔 제제인데요. 보톡스, 백신 등 특별한 주의를 요하는 제품은 품목허가와는 별도로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에서 국가출하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출하승인 없이 국내에 판매하여 현재 해당 제품은 품목허가 취소 처분을 받았습니다. 휴젤은 수출 목적으로 국내 무역 회사에 판매했으므로 국가출하승인 대상이 아니라고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고요.
이렇듯 대내외적으로 어려움이 있지만 휴젤은 중국 등 해외 진출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습니다. 실제로 국내 보톨리눔 제제 기업 가운데 중국에 공식 진출한 곳은 휴젤이 유일합니다. 2022년 중국 보톡스 시장 점유율은 무난히 10%를 달성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1년간 휴젤 주가 시세 추이
출처: 네이버
· 삼성 SDI: 최윤호 사장은 지난 21일 3억 4천만 원로 500주 매입. 취임 직후부터 책임 경영을 강조한 최 사장의 경영 행보인 것으로 보입니다.
팬데믹 이후로 자사주 매입에 나선 국내 기업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자사주 매입에 대해 알고 대응해야 할 필요성이 생긴 건데요. 특히 코로나19로 주가가 급격히 하락한 상황에서 주가 안정화를 꾀하는 목적으로 회사 주식을 사들이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실제로 금융위원회는 시장 안정화를 위해 지난해 일정 기간 동안 자사주 매입 규정을 한시적으로 완화하기도 했습니다. 자사주 매입 소식을 접하면 이제 조금은 더 성숙한 투자자의 관점으로 해석하게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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